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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수술하다 병 옮은 의사, 죽음 준비하며…뭉클

[중앙일보] 입력 2012-12-04 1:20 / 수정 2012-12-04 1:20 글자 작게글자 크게
제일병원·미즈메디병원 설립자인 고(故) 노경병 박사는 연명치료 중단과 아름다운 죽음(웰다잉)을 실천한 의사다. 환자 수술을 하다 C형간염에 감염됐고, 2003년 임종 석 달 전에는 눈에 띄게 악화됐다. 아들 노성일(60) 미즈메디 이사장이 간 이식을 권했지만 “오래 사는 게 중요하지 않다”며 거부했다. 이때부터 ‘죽음 준비’를 시작했다. ‘죽는 건 나니까 그 방식은 내가 정하겠다’는 오랜 신념에 따라서다.

 노 박사는 심폐소생술·인공호흡 등 어떠한 생명 연장치료를 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지인들에게 “그동안 고마웠다”며 일일이 전화를 했다. 불편함이 남은 사람에게는 “본의 아니게 마음을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며 용서를 구했다. 아끼던 물건이나 재산은 교회·학교에 기부했다. 문병 온 이들에게는 “천국이 좋으면 초청하겠다”며 농담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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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종 열흘 전 마지막 입원 때 “ 고통받고 싶지 않다”며 재차 연명치료 중단을 못 박았다. 아들 셋의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갠 상태로 79세의 나이로 편안하게 운명했다. “나는 행복하다. 감사하게 살다 간다”라는 말을 남겼다. 노 박사는 장례식 비용을 따로 마련해 놓았고 부조금·화환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장례 마치면 1000만원 남을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노 박사를 한국의 대표적 아름다운 마무리 사례로 꼽는다.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손명세(연세대 보건대학원장) 공동대표는 “국내 최고의 웰다잉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말한다.

 노 박사의 길을 좇아 존엄사를 택하는 사람이 늘고 있지만 갈 길이 멀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연구소가 40개국 죽음의 질을 평가한 결과 한국은 32위로 하위권이었다. 호스피스 이용률(12%)이 낮고, 병원 사망률은 높다는 이유 등으로 이런 결과가 나왔다. 암 환자의 가정사망률은 1991년 77%에서 지난해 9.3%로 떨어졌다. 대신 병원 사망률은 19.3%에서 87.7%가 됐다.

 마지막까지 병원에 있으니 주변 정리는 꿈도 못 꾼다. 서울대병원에 입원 중인 말기 위암환자 정모(56·여·서울 강서구)씨는 “일주일마다 화단에 물 줘야 하는데, 감이 다 익었느냐”고 남편(59)에게 묻는다. 식도암 말기환자 조모(44·인천시)씨의 부인(43)은 “남편이 좋아하는 낚시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말기환자가 집에서 보내려면 의사가 왕진하는 게 좋다. 하지만 거의 불가능하다. 왕진비가 일반 진찰료와 같아 그리할 동기가 없다. 말기환자는 통증 관리가 중요한데 그게 쉽지 않다. 보건소가 가정간호 서비스를 하지만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장기요양보험 케어를 받는 암환자도 거의 없다. 서울대 의대 허대석(종양내과) 교수는 “왕진을 가면 반나절에 3명 정도를 진료하지만 병원에서는 40~50명을 본다. 수가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아파트 문화도 걸림돌이다. 집에서 숨진 뒤 시신을 장례식장으로 옮겨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2010년 암·치매 등을 앓던 한 환자는 지방의 요양병원 일반병동에서 숨졌다. 거기에는 임종실이 없었다. 본지가 44개 대형 대학병원을 조사했더니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중앙대·순천향대 부천병원 등 8곳에는 일반병동에, 서울대·서울성모병원 등 13곳은 완화의료(호스피스) 병동에 임종실이 있다. 단국대·부산대는 처치실과 겸해서 쓴다. 손명세 대표는 “임종실 입원 수가(1일 기준 18만원)를 만들어 건강보험을 적용하면 환자 부담이 줄어(3만6000원) 병원들이 임종실을 많이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가정 임종이 쉽지 않아 완화의료 확대가 대안으로 떠오른다. 하지만 암 사망자의 12%만이 호스피스 서비스를 이용한다. 서울대 의대 윤영호 건강사회정책실장은 “주택가 근처나 병원에 완화의료 병동을 많이 만들고 자원봉사자들이 암환자의 간병을 돕고 자신이 말기 상태에 빠지면 돌려받는 품앗이 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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